1981년 성탄절, 나는 서울 영등포구 독산동 K교회에 있었다.
그 때 나는 신학교 2학년생으로 K교회 교육전도사를 했다.
K교회는 개척교회였다.
K교회 J목사님은 뜨겁고 열성적인 목회를 하셨다.
그해 성탄절 감사예배를 드리는 중에 성찬식이 있었다.
J목사가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신다.
얼떨결에 성찬 보좌를 하게 되었다.
성찬 보좌는 처음이었다.
J목사님의 내레이션이 있었다.
성찬식 예문에 나오는 말씀 중,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읽으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
J목사님이 그 대목을 읽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성찬 분급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이 내 온몸을 전율했다.
눈물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 없었다.
속으로 감정을 추스르며, 눈물을 양복소매로 훔쳤다.
이제 성찬 분급을 할 차례였다.
J목사님, 성찬 제정사를 낭독하시며 내게 떡과 포도주를 먼저 건네신다.
그걸 받아먹는 순간, 또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속으로 '이러면 안 되지' 하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참으로 난감했다.
J목사님이 빵을 들고 서서 낭독을 하셨고, 나는 포도즙을 들고 섰다.
그런데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지는데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눈물이 쏟아지니, 이번에는 콧물까지 나온다.
그 때 나는 단벌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손수건이 없었다,
눈물 콧물을 닦을 손수건도 없으니 연신 저고리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았다.
내가 그렇게 눈물 콧물을 쏟으니, 성찬식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눈물은 얼굴에서 흐르다 떨어지고 말지만,
콧물은 고무줄처럼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 때 내 느낌은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주님의 성찬을 보좌할 수 있는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내 온몸을 적셨다.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성찬식과 눈물이었다.
2. 1990년 부활절이었다.
그 해 봄 나는 목사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성찬예식을 집례하게 되었다.
부활절 새벽,
나는 교회 마룻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나의 허물과 잘못에 대하여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 때 대충 이런 기도를 드렸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었나이다.
당신의 귀한 말씀을 증거하기에는 너무나 미욱하고 모자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먼저 당신께 나의 모든 잘못과 허물을 비옵나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용서받은 기쁨으로 일하게 하시고 주님의 쓸모있는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심부름 잘하는 종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일 예배 설교를 마치고 성찬식에 앞서 세례식을 집례하게 되었다.
그 날은 우리집 큰아들과 몇 분의 교우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와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문집에 나와 있는 대로 유아세례 예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대신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어린이가 성장하는대로 성례의 뜻을 가르치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가르치겠습니까?"
이 대목을 한번에 다 읽지 못하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생활 속에서 경건한 모범을 보이기를 힘쓰며,
이 어린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양육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겠습니까?"
눈물보가 터졌다.
내가 우니 아내도 울고, 교인들도 운다.
교우들에게 세례를 베푸는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고,
이어서 성찬식을 집례할 때도 하도 감정이 복받쳐 예문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속으로 '진정해야지' 하면서 마음을 추슬러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 성찬식을 하는 중간에 몸에 진동이 와서 그것을 자제하고
간신히 성찬식을 마쳤다.
그 당시 왜 눈물이 쏟아졌는가?
나 같은 못난 죄인이 지금 세례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 내 아들 아딧줄을 대신해서 내 아내에게 묻는 질문은 곧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송구스럽고 부끄러웠다.
또 성찬식을 처음으로 내가 집례하면서,
10년 전 서울 독산동 K교회에서 경험했던 감격과 전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굴은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목사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경험하는 성찬식을 집례하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으로 세례식을 집례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목회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로서 매순간 하나님 앞에 맑고 깨끗하고 투명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 부름 받고 가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경험하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안에 내가'(神人合一)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결코 자신의 눈물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그러나 뜨거운 눈물 콧물 쏟으며 성찬예식을 인도했던 두 번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어본 지가 퍽 오래되었다.
